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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지 말고 그 마음을 내라

Prod. Theta 2021. 4. 15.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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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지 말고 그 마음을 내라▫️

이렇게 무념과 무상이 분명한 도인은 마치 표주박이 물결 따라 흘러가듯이 어떤 상황에도 집착하지 않고 둥둥 떠내려간다(임운등등任道藏騰), 마음은 항상 텅 비어 있어서 사물이 오는 대로 선명하게 비치고, 그에 따라 적절히 반응하게 된다. 소위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졸리면 자는 무위의 삶을 살게 된다.

 

 

이렇게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이 없이 순리대로 무심히 살아가는 것을 ‘무주(머무르지 않음)'라고 한다. 무주에서는 무엇보다 대상에 집착하는 망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즉 정확하고 자연스러운 인과의 길과 요령을 터득해 무위도(애쓰지 않아도 이루어지지 않는 게 없는 도리)가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서 자아가 노력해서 무위도를 실행시키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비워서 그 작위 자체가 없어질 때 저절로 무위도가 이루어진다. 달인은 평상심으로 일하고 일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간단하고 쉽다. 육조 스님은『금강경』읽는 소리를 듣다가 “마땅히 머물지 않고 그 마음을 내라” 라는 대목에서 깨쳤다. 그는 두 번 깨치는데, 두 번 모두 이 대목에서 마음이 쉬어버린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무주'의 내용이다. 육조가 알아챈 내용이 바로 '현존의 형이상학을 깨는 법'이며, 그것을 알아듣고 '무주의 도리’를 깨친 것이다. 무주가 바로 무명의 본질인 현존의 형이상학을 깨는 방법이다. 그런데 모든 문제의 시발점인 '마음의 일어남'은 왜 발생하는가? 그것은 밖으로 무엇인가를 구하기 때문이다. 구함이 없으면, 고통도 없다(무구무고無求無者). 구함이 있으면 고통도 생긴다(유구규고有求有苦), 밖으로 구하는 마음은 '현존의 형이상학'에 도취되어 일어난다. 자기 딴에는 잘하려고 하는 것이 모든 고통의 뿌리인 셈이다.

범부가 이 사실을 돌이켜 자각하기는 매우 어렵다. 행복을 추구할수록 행복으로부터 멀어지는 이 아이러니컬한 상대성의 구조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 것인가? 여기서 마음공부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절대를 깨달은 눈 밝은 가이드의 안내가 간절해진다.

 

 

절망을 극복하는 길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데 있지 않다. 절망과 희망의 상대성 속에서는 잠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도 언젠가는 다시 절망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쳇바퀴 속의 삶을 윤회라고 부른다. 진정으로 절망을 극복하는 길은 절망과 희망이라는 상대성 그 자체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이것은 절대를 깨달아야 가능해진다. 절대가 어디 있는가? 바로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들의 마음이 바로 절대이다. 결국 모든 문제와 마찬가지로 마음을 깨달아야 근본적으로 해결된다. 만약 지금 이 자리에서 '마음'이라는 이 절대가 분명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마음공부에 도전해야 한다.

언제까지 희망과 절망을 반복하고 살 것인가. 상대 세계로부터 빠져나와서 절대의 자유인으로 사는 것이야말로 인류의 진정한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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